1987년 5월 고산리 주민이 흙을 채취하기 위해 땅을 파다 석창과 긁개를 발견하고 제주대학교 사학과 학생을 통하여 이청규 교수에게 알려졌다. 같은 달 출토지점 일대를 답사하여 첨두기 등 타제석기 3점을 추가 발견되고 융기문토기가 채집된 후 제주대학교박물관의 1991년 지표조사 및 3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학계에 보고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9년 국가사적 제412호로 지정되었다.
고산리유적 전경(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발굴지 전체 전경
제주 고산리 유적 원경
제주고산리 선사유적 원경 (당산봉에서 바라본 모습)
제주고산리유적 근경
공백기로 남아있던 한국신석기문화의 시작을 8,000년에서 12,000년 전까지 끌어올림
후기 구석기의 세석인문화가 지속되면서 초기 신석기 산물인 양면 눌러떼기(양면박기) 기법의 석기와 원시형 고토기 출현하는 복합적인 문화양상
*세석기 : 크기가 작고 가느다랗고 대부분 날카로운 날을 가짐.
*양면박리 : 양쪽을 뿔이나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눌러 떼서 다듬음.(이차가공)
한국 내륙지방에서 확인된 바 없는 유물조합상
유물조합상 상 초기신석기문화 아무르강 중․하류 유적과 흡사
시베리아, 만주, 일본, 한반도 지역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초기신석기문화연구에 좋은 자료를 담고있는 중요한 유적
현재까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토기는 모두 12,000~10,000년 전 생산된 고토기(古土器)이다. 특히 섬유질토기인 일명 ‘고산리식토기’는 전체적인 출토수량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토기성형시 식물(초본류)의 줄기 혹은 잎을 점토와 함께 섞어 만든 후 소성(불에 구움) 시 타 없어진 후 그 흔적이 토기 내외면 뿐만 아니라 속심에도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섬유질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알려진 바 없는 토기로 신석기시대 주요 대표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보다 앞서며 아무르, 연해주, 바이칼, 일본열도, 중국에 걸쳐 넓은 분포권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신석기시대 초장기의 고토기(古土器)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제주고산리유적은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에 위치하며 제주도 최서편에 자리하고 있다. 위도로 동경 126°12′, 북위33°17′이다. 이 일대는 한장밭이라 불리는 평탄한 대지로 이루어진 곳이며 해발고도는 15-25m정도의 해안저지대이다. 이 지역은 경사가 아주 완만하고 해발고도 200m까지 2~3°의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지형은 특히 고산에서 대정읍 모슬포 사이의 제주도 남서부 지역이 잘 발달되어 있다. 유적은 고산1리에서 해안포구로 이어지는 자구내라는 하천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유적 옆에는 자구내마을이 자리하며 서쪽에 해발 148m 의 당산봉이, 남쪽에는 해발 65m의 수월봉이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기생화산(오름)은 10만 년 전에서 2만2천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자구내마을과 수월봉사이에는 높이 10~20m의 해안절벽이 발달과 함께 약간의 소나무림이 조성되어있는데, 화산쇄설퇴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산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석기와 토기로 나누어진다. 먼저 석기는 석촉을 중심으로 한 첨두형 석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외에도 찌르개, 긁개, 새기개, 뚜르개, 일부 가동된 석기가 있다. 박편과 돌날, 그리고 박편[부스러기]등이 다수 확인된다. 이외에도 견과류를 제분 할 때 사용했던 갈돌과갈판, 고기잡이용 어망추, 화살대를 만드는 시병연마석기 등이 알려져 있다. 아울러 융기문토기 단계의 결상이식[귀거리] 1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두 신석기초기에 생산된 고토기이며 종류별로는 고산리식토기, 원시무문양토기, 덧무늬토기, 누른무늬토기, 눌러그은무늬토기, 지자문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 외 지상식주거지, 수혈식주거지, 적석노지, 각종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결상이식(귀고리)
돌날
망치돌
찌르개
고산리식토기 파편
고산리식토기 파편
공이·연마석기
긁개
뚜르개, 새기개
석촉
세형돌날몸돌
융기문토기 파편
융기문토기
유구
유구
본 자료는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제주고고학연구소에서 출처,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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