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울산매일신문 - 제주고산리유적안내센터 관련(2021.11.03.)

관리자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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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매일신문



지발위기획-선사3 


 ? 탐라, 원시의 땅 제주는 한반도 선사문화의 요람


1만년~2천년전에 살았던 이 땅의 선사인들이 어떤 생활방식과 문화를 향유했는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 일까.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문제다. 왜냐하면 과거의 삶의 방식을 통해 오늘의 문화적 뿌리를 유추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고 어떤 경로로 흘러 왔는가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의 우리가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류의 발전 과정 속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왔는가를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선사문화의 시발점이자 해양쪽 이동 경로인 제주를 찾았다.


울산과 제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친연성을 가진 지역이다. 지난 봄 울산과 제주는 문화예술 분야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두 광역단체의 교류는 오늘의 이야기지만 사실 선사시대부터 문화적 교류의 흔적은 얼마든지 유추가 가능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 뿌리가 면면히 이어져 근대에는 제주도 출신 해녀 등 3만 명 이상이 울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물론 그 뿌리는 해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현재 울산시 나잠어업에 등록된 사람은 1,500여명으로, 제주도, 대마도 등에서 정착한 해녀들이 많다. 15세기 중엽부터 제주도를 떠나 경상도·전라도 해안에서 사는 제주도민이 많아졌다. 당시 울산을 비롯해 육지사람들은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와서 살았던 사람들을 ‘두모악(豆毛岳)’이라 불렀다. 이 이름은 한라산을 ‘두모악’, ‘두무악’(頭無岳)이라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고대사에서 제주와 울산의 친연성도 연구대상이다. 제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경면 고산리 선사유적이 있다. 신석기 유적지다. 이외에도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삼양동 선사유적시설은 앞으로 울산의 선사문화 유적지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장소다. 무엇보다 제주도는 울산과 함께 고대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제주 선사문화의 생생한 역사를 보여주는 삼양동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해안평탄대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마을 유적이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후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인 동시에 제주지역 기원전 5~1세기 송국리형 주거문화수용단계의 취락흐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기도 하다.


삼양동 선사유적지는 청동시대 이후 집터와 여러 유물이 발견된 생활유적이다. 출토 당시 많은 토기류가 발견됐고, 검?옥팔찌?돌도끼 등 유물과 함께 쌀, 보리, 씨앗 등이 발견돼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삼양동 선사유적지는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마지막 단계를 느낄수 있는 사적이다.


제주가 동북아 선사문화의 보물창고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고산리 선사유적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에서 초기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선사유물이 고스란히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곳은 무엇보다 초기 신석기시대 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 쏟아져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생생한 증좌를 실증하는 지역이다. 고산리 유적의 발굴로 인해 그동안 학계에서 공백기로 남아 있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시발점을 1만2,000년 전까지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제주 고산리 유적이 발견된 것은 고산리 원주민에 의한 우연한 발견이었다. 지난 1987년 고산리 해안가에 인접한 ‘자구내 마을’ 남쪽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이 우연히 타제석기 3점을 발견했다. 이 신고로 인해 고산리 유적은 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몇해뒤인 지난 1991년과 1992년에는 제주대학교 사학과팀, 제주대학교 박물관이 정밀 지표조사를 통해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그 결과 신창-무릉간 해안도로건설부지 등에서 고산리식 토기와 눌러떼기 기법의 타제석기가 다량 출토돼 한반도와 연계한 신석기유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주 고산리 유적을 보전, 전승하기 위해 제주특별차지도와 제주역사문화진흥원에서는 2010년 1월 제주 고산리선사유적지 종합기본계획을 착수, 고산리 유적 안내센터가 들어섰다. 지난 2018년 제주 고산리 유적 안내센터는 세계유산본부로부터 제주고고학연구소로 위탁운영을 시작해 다양한 체험학습의 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주 고산리 유적 안내센터는 주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선사유적을 일반인에게 활용하고 있는데 관광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교육보다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는 현지 담당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선사유적을 어떤 식으로 복원하고 이를 어떻게 관광산업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제주의 경우 세계유산센터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문화유산을 맡아 체계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특히 체험프로그램의 경우 전문적인 선사시대 생활상을 교육받은 전문가그룹에 위탁운영을 맡겨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주의 선사유적 활용사례는 앞으로 울산의 청동기시대 유산 복원이나 암각화유적 복원과 활용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산리 유적센터에서 체험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제주고고학연구소 김용덕 센터장은 “선사유적의 관광콘텐츠는 공무원적인 시각보다는 문화재 활용이나 관광, 관련산업 전문가 그룹의 다양한 참여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프로그램 선정에서도 체험활동이 중요하다”며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대면 체험에 제약을 주고 있지만 그만큼 또다른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사유적의 관광산업 활용에 대해 제주 세계유산본부 김나영 주무관은 “우리나라 유적 전시관 사례를 검토해 보면 행정직 공무원을 관장과 직원으로 두는 경우 사업이나 운영이 침체되는 양상을 보인다"며 "실시 설계 단계부터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유적 관리를 해나가면 선사유적의 활용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영 편집이사


사진제공 제주 세계유산본부 고산리 유적전시관